살아남은 아이들, 대학생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
살아남은 아이들, 대학생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
  • 김효정 기자
  • 승인 2021.03.02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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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어난 '정인이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우리에게 분노와 슬픔을 안겨줬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은 학대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이 아이들은 마음속에 고스란히 상흔을 지닌 채 자란다. 아동학대 피해자는 아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 곁엔 여러 차례 걸친 폭력을 겪은 대학생들이 있다. 그때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된 이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간다.

 학대에 무방비로 놓인 아이들

 

보건복지부가 2019년 발표한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4만 1,389건으로 전년대비 13.7% 증가했다. 아동학대 발생 장소는 '가정 내'가 총 2만 3,883건(79.5%)로 가장 높았다. 더불어 전국 평균 피해 아동 발견율은 3.81%로 선진국인 미국(9.2%), 호주(10.1%)에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사실상 아동학대 '무법지대'였다.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그제야 국회는 2013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했다. 아동학대 가해자가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법체계가 정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아동학대 대응 대처는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아동학대 대응 체계의 과제와 개선 방향' 보고서를 살펴보면 아동학대 신고 접수 측면에서 지구대 경찰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부족과 정보 오류 ·미파악으로 인해 사건 정보 전달이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이로 인해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의 통보 누락 및 지체, 시간 경과 후 일괄 접수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3만 45건에 달하는 아동학대 사건 중 피해 아동에 대한 응급조치가 이뤄진 사건은 4.4%(1,313건)에 불과했다. 그다음 단계인 학대 행위자에 대한 긴급임시조치도 6.5%(1,960건)뿐이었다. 이는 사건 발생 초기에 이뤄져야 하는 조치가 미진하단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사회적 보호망에서 벗어난 아동들은 학대에 그대로 노출된다. 정인이 사건도 사망 전 세 차례 신고가 있었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대학생이 된 '정인이'

 

아동학대를 겪은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대학생이 된 그들이 기억하는 고통의 시간을 들어봤다.

<일러스트레이션=정영림 기자>

 

#1 "너무 두려워 기어서 도망가려 했으나 엄마는 나를 붙잡았고 그 상태로 계속 맞았다"

우리 대학교에 재학 중인 A 학생은 7살 때 어머니에게 심한 매질을 맞았다. 그는 "엄마는 밤새 온 힘을 다해 소릴 지르며 효자손으로 내 온몸을 때렸다. 그때 엄마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며 "온몸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고 두려웠던 당시를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효자손 두 개가 부러졌을 무렵 엄마에게 잘못했다며 목이 쉬도록 울면서 빌었다. 더 맞았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시간이 한참 지났기에 맞은 이유나 이후 상황들이 기억나진 않는다. 긴 시간 동안 매를 맞고 울었던 장면만 여전히 머릿속에 가득하다"고 말했다.

성인이 된 A 학생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어른이 됐음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두렵기만 하다. 그는 "주변의 큰 소리나 손이 올라가는 모든 행동이 힘들다"며 "소음이 심한 공사장 주변이나 사람이 많은 번화가 같은 곳들은 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주변 사람들이 기지개만 켜도 눈을 질끈 감고 몸이 움츠러든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금은 엄마가 나를 때리진 않지만 그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 맞아야 했는지가 궁금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나에겐 너무 두렵고 힘든 기억이라 엄마에게 이유를 물어볼 생각조차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2 "발로 내 배와 머리를 밟았다"

아동학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대학에 재학 중인 B 학생은 언니가 휘두르는 폭력을 견뎌야만 했다. 그는 "부모님은 일이 바빠 집에 잘 있지 않았고 나를 돌보지 못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언니와 나의 복종 관계는 너무나도 당연했었다"고 전했다.

B 학생은 "한번은 부모님께 게임을 하다 혼난 적이 있다. 그때 언니가 시켜서 한 것이라 말했었다. 이 사실을 언니에게 들키자 발로 배와 머리를 심하게 밟혔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일을 부모님께 말하면 더 심하게 맞을 것이라며 나를 협박했다"라고 털어놨다.

언니는 B 학생에게 이상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친구와 놀 때도 언니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허락을 받더라도 언니가 정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며 "제시간에 돌아오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늦으면 아무 이유 없이 1시간 넘게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언니는 침을 먹으면 사이가 좋아진다며 자신의 침을 내게 먹이기도 했고 친구들과 문자를 하면 휴대폰 검사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B 학생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땐 보건 선생님이 알아주길 바라며 '어제 언니한테 맞아서 머리가 아프다', '멍이 들었다'며 치료를 해달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보건 선생님은 가벼운 다툼이라 생각했는지 웃으며 나를 교실로 돌려보냈다"며 "그때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어른들한테 이 사실을 말하면 안 되겠구나'란 생각했었다"고 전했다.

그는 여전히 언니가 무섭다. "지금은 나에게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진 않지만, 아직도 언니가 두렵고 당장이라도 나를 때릴 것만 같다"며 "이제는 같은 성인이지만 만약 지금 싸운다 해도 언니를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3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칼로 협박했다"

우리 대학 C 학생은 친오빠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그는 "오빠는 집에 둘이서만 있으면 나를 심하게 구타하고 협박했다"며 그때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공포에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냉장고에 밀쳐 숨이 전혀 쉬어지지 않을 만큼 목을 강하게 조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을 교묘히 때렸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칼을 들고 내게 수차례 협박을 가했다"고 말했다.

폭력에서 벗어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그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그는 "오빠는 나를 때리기 전 독특한 소리를 냈다. 시간이 많이 지나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주변에서 비슷한 소리가 들리면 두려움이 밀려온다"며 힘겨워했다.

 

 

대학생이 돼서도 벗어날 수 없는 공포의 늪

 

어릴 때 학대를 겪고 자란 피해자들은 정신적·신체적 충격으로 인해 이후 트라우마와 심각한 후유증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 '아동기 트라우마 경험과 성인기 우울의 관계'(송리라·이민아, 2016) 논문에 따르면 아동기에 경험하는 사건들은 당시뿐 아니라 발달과정이나 개인의 특성 등에 영향을 미쳐 생애 과정에서 그 효과가 축적될 수 있다. 이후 청소년기에 크게 영향을 미쳐 자살 생각이나 자살 행동, 우울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정찬승 홍보위원장은 "심각한 학대의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오랫동안 남길 수 있다"며 "학대 피해자들은 성인이 돼도 스트레스를 겪는 상황에서 쉽게 남들의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질 수 있다. 이로 인해 혼자 문제를 삭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스트레스 상황이 감당하기 힘든 형태로 발전해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이 트라우마를 겪는 생리학적 이유는 심각한 충격을 받았을 때 뇌 자체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 "이런 경우 스트레스 반응이 과민해질 수 있고 작은 일에도 놀라며 자신에게 위험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동학대 기억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처럼 피해자들을 붙잡고 있다. 우리 대학 이승희(아동학) 교수는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항상 먹거나 술을 과하게 마시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면 빠르게 전문 상담가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이런 문제는 혼자서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신이나 사회 또는 주변에 내재된 분노가 있을 수 있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과거의 기억과 인지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더불어 그는 "과거의 기억을 묻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며 "전문가 도움을 받아 내면의 문제를 해결한 후엔 삶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우리 대학 학생 상담센터 백은지 전임 상담원 역시 "학대 피해자들은 마음에 쌓여있는 응어리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직접적인 상담과 온라인을 통한 명상" 등을 추천했다. 또한, 그는 "학대를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김효정 기자
Juwon100@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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