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그늘에서 일하는 현장 실습생
법의 그늘에서 일하는 현장 실습생
  • 조민서 기자
  • 승인 2021.12.0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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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여수에서 한 청년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그는 현장 실습생 고(故) 홍정운 씨였다. 이 소식을 듣고 여수를 방문한 한 청년의 어머니는 故 홍정운 씨 부모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4년 전 제주의 한 생수 제조업체에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사고로 숨진 故 이민호 씨의 어머니였다. 청년들의 안타까움 죽음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며 현장 실습의 미흡한 운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7일 실시된 거리행진 <출처=민주노총 유튜브>

 

직업훈련생 아닌 '저임금 노동자'
국가통계포털 KOSIS의 현장 실습 운영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28,054명의 대학생이 현장 실습을 이수했다. 이처럼 매년 많은 수의 학생이 현장 실습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중 보험 미가입 학생은 2,706명이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보도자료 '국민권익위, 직업계고 현장 실습생 알 권리, 권익보호 강화한다'를 통해 지난 10월 여수시 직업계고 현장 실습생 사망사고를 계기로 그동안 국민 안전과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제도 개선 권고와 관련해 이달 말까지 이행 여부를 중점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권익위는 지난 7월 '국민권익위, "공직자의 부정한 사익추구도 평가에 반영해야" 국민생각함 조사 결과'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해당 자료는 직업계고 학생들이 졸업 전 실시하는 현장 실습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설문조사 결과로, 해당 설문조사에서 공공기관 청렴수준 평가 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안으로 '민원인이 해당 기관과 업무 처리 과정에서 경험한 부패'가 37.9%(788명)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가장 크게 반영이 필요한 부패 경험 항목으로는 '이해충돌 상황에서 공직자의 부정한 사익추구'가 52.2%(610명)로 절반이 넘는 응답률을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故 홍정운 씨의 안타까운 소식은 전국으로 전해졌고, 전국 특성화고 학생과 졸업생들은 '다시는 정운이 같은 죽음이 없어야 한다'며 지난달 7일 청와대로 행진했다.


'학교부터 노동교육운동본부' 단체가 주최한 '부당함을 거부할 권리, 학교부터 노동교육 실시하라! 거리행진'에는 △故 홍정운 씨의 친구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운동본부 소속 시민사회단체 △안전한 현장 실습을 바라는 시민 90여 명이 참여했다. 그들은 서울시청 광장을 시작으로 광화문, 청운동 주민센터까지 "현장 실습생도 노동자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해 살인기업 처벌하라", "학교에서 노동교육 제도화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날 거리 행진에 참여한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故 홍정운을 추모하는 자리이면서, 현장 실습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꼭 필요한 노동교육이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요구하는 행진이었다"며 "구체적으로 2022년 교육과정이 개정되는 시기에 총론에 노동교육을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장 실습생에 대한 부당 대우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용노동교육원 송태수 교육개발실장은 "학생들의 현장 실습을 의무적으로 이행하던 관행이 오래 지속됐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사업주가 더 싼 노동력을 이용할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최근 학습중심 현장 실습으로 취업 가능성을 염두에 둔 학생들의 약점을 이용해 현장 실습이 직업훈련 기회로 활용돼야 함에도 사업주들은 여전히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러스트레이션=이지원 기자>

 


현장 실습생은 현대판 노예?
이러한 현장 실습생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대학사회 내에도 만연했다. 동의대에 재학 중인 A 씨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현장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실습처 담당자가 계절이 바뀐 탓에 이제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100개가량의 선풍기를 현장 실습생들에게 청소시켰다"며 "이는 현장 실습생이 해야 할 업무도 아닐뿐더러 해당 근무처에서 현장 실습생은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게 해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대구의 모 대학을 졸업한 B 씨는 "학교에서 말하기를 해당 실습처는 4대 보험이 다 적용된다고 했으나 막상 실제로 출근해보니 4대 보험 혜택은 받을 수 없었다"며 "학교 측에 현장 실습 근무지와 담당자에 대한 평가서류를 제출할 때도 솔직하게 답할 수 없었다. 실제로 회사에서 업무와 관련 없는 과도한 잡일을 시키는 등 부조리한 경험을 겪었음에도 좋은 실습 평가를 받기 위해 묵인했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현장 실습생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현장 실습이라는 것 자체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요소가 많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현장 실습생의 부당한 처우는 우리 대학교 학생들도 겪고 있었다. 우리 대학 C 학생은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며 교육 등 계획된 일정을 변경하는 일이 잦았다"며 "해당 기관과는 무관한 청소 및 화단 정리 같은 잡다한 일을 계속 시켰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기대했던 교육에 대한 실망감과 더불어 현장 실습 기관의 수직적 관계를 바탕으로 부당한 일을 지시 받는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며, 현장 실습생이라기보다는 자원봉사자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익명 제보자에 의하면 시간 채우기 식 실습으로 실습생들에게 비전을 제공하지도 않고 실습생들에게 실습 일정을 떠넘긴 경우도 있었다. 그 이외에도 우리 대학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에는 그와 같이 부당한 처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학생들의 게시글로 가득했다. 에타에서 불만을 토로하던 익명의 한 학생은 "현장 실습은 노예"라고 말했다.


우리 대학 현장 실습 운영 규정 제2조 1항에 따르면 "현장 실습이란 본 대학교와 현장 실습 기관과의 협약을 통해 본 대학교 학생이 현장 실습 기관에서 이론의 적용, 실무교육 및 실습 등의 산학협력 교육과정을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C 학생을 비롯한 익명의 현장 실습 경험자들은 실무교육과 실습보다는 잡일을 비롯한 시간 채우기 식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우리 대학 현장 실습지원센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현장 실습은 각 학과의 방문지도 교수와 기업이 기업체와 실습생을 연결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따라서 실습처와 실습생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 같은 경우 해당 학과에서 우선 문제 해결을 시도하며, 해결이 불가한 경우에 한해서만 현장 실습지원센터에 보고된다"며 "이러한 구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현장 실습지원센터는 바로 알 수 없기에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더 좋은 기업에서 현장 실습 할 수 있도록 각 학과 교수님께 부탁만 드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겪는 현장 실습의 부당함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 대학 D 학생은 "현장 실습처는 실습과 무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서슴치 않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정도 수준인 줄 알았으면 실습생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딱 초등학생 수준이다' 등의 모욕적인 말을 해 수치심을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우리 대학 E(경영학) 교수는 "현장 실습생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학생들에게 하대하는 인간 개인적인 문제도 크다"며 "소수지만 이른바 '악덕 현장 실습처'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실습처는 학교 측에서 인지하고 학생들을 보내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레이션=이지원 기자>

 


학생 울리는 현장 실습, 바뀔 수 있을까
지난 7월 교육부가 공개한 '대학생 현장 실습 학기제 운영규정 매뉴얼'에 따르면 대학생 현장 실습정의에서 '학교 밖'은 일반적인 대학 활동이 이뤄지는 대학 내 이론·실험·실습 수업공간이 아닌 외부를 의미한다.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 내 소재하는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 △창업기업 △학교 기업 등이 현장 실습학기제의 실습 기관 대상인 것이다.


여수 현장 실습 사망 사건 발생 이후 지난 10월, 전국 직업계고 현장 실습 전수 조사와 관계부처 합동 지도·점검을 조기 시행했으나 이 또한 직업계고 현장 실습에 관한 대처뿐이었으며, 대학생 현장 실습에서의 부당한 대우와 허점은 언급되지 않았다.


우리 대학 현장 실습지원센터는 "우리 대학은 법 개정에 따라서 현장 실습 관련 규정을 조금씩 조정해 나가고 있고, 학교 지원금도 늘리는 방식을 통해 학생들의 실습비도 조금이나마 더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내년 현장 실습은 지금보다 더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송태수 교육개발실장은 "사업주의 인식 개선 및 정부의 조처도 필요하지만, 학생들이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학생들의 경우 자신의 노동 인권이 침해되더라도 수정과 조처를 요구하는 비율은 채 1/3도 되지 않기에 노동 인권교육을 받아 본인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택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실제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현장 실습의 경우 노동법이 전면 적용되지 않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며 "사회생활은 '원래 힘들다'거나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실습에서 부당한 처우가 일어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21대 국회 입성 이후 꾸준히 '청년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낸 이탄희 의원은 지난 10월, 산업안전보건법·근로기준법과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간 처벌 수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근거로 현장 실습생 보호법 발의를 추진했다. 그는 "이번 여수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은 현장 실습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라며 "홍정운 씨가 반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동안 사업주가 잠수 작업을 한 번도 안 시켰다. 즉, 이 일이 위험해서 돈을 많이 지급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구조적인 현장 실습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여수 현장 실습생 사망 사건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B 씨는 "현장 실습생이라는 위치가 △학생 △아르바이트생 △정직원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기에 어느 법에도 보호를 받을 수 없는데, 현장 실습처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부당한 지시를 내린 것 같았다"며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조민서 기자
alstj21849@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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