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인권센터, 유명무실 되지 않으려면
대학인권센터, 유명무실 되지 않으려면
  • 박혜정 기자
  • 승인 2022.03.07 11: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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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같은 학과 남학생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특정 여학생들을 성희롱하고 모욕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 사건을 인지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교내 인권센터가 있다는 것을 보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A 씨는 인권센터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참고인 진술 때 가해자와 마주치는 2차 피해까지 당해야 했다.

 

인간다울 권리, 인권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1호로 지정돼 대한민국헌법에서 법률로써 보장하고 있다. 또한 1948년 12월 10일 제3회 국제연합(UN) 총회에서는 '세계인권선언문'을 채택했다.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에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고 명시하며 인권의 존엄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종종 국가, 공공 단체 등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2008년 한 고등학교에서 B 학생은 학생 인권 토론회 전단지를 학교에 배포한 이유로 진술서 강요와 학교 측의 징계 절차를 밟았다. 그는 학교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고, 해당 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학교 측이 허가받지 않은 전단지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징계 절차를 진행한 행위는 대한민국헌법 제2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인권침해는 학생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도 발생한다. 2019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공개한 '대학 내 폭력 및 인권침해 실태 및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1,902명(대학생 1,265명·대학원생 637명) 중 46.4%(833명)가 입학 이후 인권침해 피해 경험이 1번이라도 있다고 응답했다. 


피해자들에게 인권침해 이후 어떻게 대응했는지 설문 조사한 결과 880명 중 '친구, 선후배, 부모님 등 개인적인 관계에서 털어놓되 학교 안에서 공론화 하지 않았다'는 선택지에 △4년제 학부생 50.6%(256명) △전문대 학부생 43.1%(47명) △대학원생 62.3%(154명) 총 457명이 응답해 답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들은 인권침해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도 대다수가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실태조사 결과, 적은 비율이지만 △4년제 학부생 6.8%(28명) △전문대 학부생 8.1%(7명) △대학원생 11%(23명)이 성희롱, 성폭력 이외의 인권침해를 겪게 되었을 때 대학이 어떤 지원을 해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관련 기능을 하는 학내 기구의 존재 여부조차 알지 못한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러한 대학 내 인권 전문 전담 기구의 부재는 인권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대학원생이 급증하면서 교수의 대학원생 인권침해 사례들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됐다. 이에 더 나아가 대학 내 폭력 및 인권침해가 핵심적인 유형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대학 내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개념화가 이뤄졌고, 대학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대학 내 인권 확보를 위한 정책 마련이 요구됐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와 정부는 대학 내 인권에 정책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범국가적으로 대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를 촉구했고, 2018년 대학가에서 일어난 미투(MeToo) 운동으로 대학 내 인권보장 실천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대학 구성원들의 요구와 움직임이 확산됐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국회의원의 대학 인권센터 설치 의무를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권고사항으로 여겨지던 대학 내 인권센터가 의무화됐다.

 

<일러스트레이션=박소현 기자>

 


인권센터, 정말 인권 보호 중인가?


고등교육법의 개정으로 올해 3월까지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인권센터가 설치된 대학은 전국 88곳에 불과했으며, 이마저도 인권센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대학 인권센터의 심사기준으로서 기본권의 기능'(장영철, 2021) 논문에 따르면 대학 내 인권센터는 '대학에서 대학 자치와 주체의 다양성으로 인해 인권과 기본권이 충돌하는 양상이 복잡하게 나타난다. 이에 인권센터는 헌법과 법률 등 실정법으로 구체화 된 인권을 기준으로 인권침해 신고에 대해 결정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요구된다'며 인권센터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부산광역시 인권센터 인권정책팀 임애정 팀장은 "대학 내 인권센터는 인권 교육과 실태조사를 통해 인권 침해를 예방해야 한다"며 "인권 침해가 발생한 경우, 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해 침해 행위로부터 피해를 구제하고 후속조치를 취해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인권침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교육공동체 내 인권문화를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곳"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대학 내 인권센터는 단순히 학내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인권문화를 조성해야 하는 책임이 부여된다. 하지만 인권센터는 운영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인권정책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대학 인권센터 운영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학 내 인권센터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력 부족 △고용 불안정 △전문성 부족 △예산 부족 등을 꼽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지난해 전국 11개 국·공립대학교로부터 제출받은 '대학인권센터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인권센터 예산 편성은 최소 1,370만 원에서 최대 12억 3,528만 원까지 차이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인권센터 예산은 △전북대 1,370만 원 △인천대 1,374만 원 △경상대 3,678만 원 순으로 저조한 반면, 서울대 인권센터의 경우 12억 3,528만 원으로 전북대 인권센터와 비교했을 때 무려 90배 이상 차이가 났다.


서울시립대 인권센터 허은영 상담사는 "인권센터 예산 부족 문제는 인권센터의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이어지고 이는 (인권침해)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피·가해자나 조직들이 방치될 수 있다"며 "대학에서 인권 감수성을 갖춰나가기 위해 인권센터의 예산 확보는 전담 인력 과 역량강화로 이어진다"며 인권센터의 충분한 예산 확보를 주장했다.


또한 '대학 인권센터 운영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인권정책연구소, 2020)에 따르면 대학 인권센터 구성원 98명 설문조사 결과, 고용형태에 따른 분포는 △정규직 22명(22.4%) △비정규직이 66명(67.3%) △무기계약직이 10명(10.2%)으로 정규직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한 대학교 인권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C 씨는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어 비교적 안정된 인권센터를 운영할 수 있었지만, 다른 인권센터를 보면 근무자들이 2년 단위로 계약해 인권센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몰라 타 대학 인권센터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이런 고용 불안정은 인권센터의 운영에 있어 단순히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인권센터 자체가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외부 압력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며 고용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인권센터의 해결되지 못한 여러 문제는 대학 내 인권 전문기관이 존재함에도 학내 구성원들이 신뢰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가져왔다. 


모 대학 교내 인권센터를 이용한 A 씨는 인권센터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인권침해 신고 전엔 오롯이 사건 때문에 힘들었다면 신고 이후에는 인권센터의 미온적이고 비상식적인 대처로 오는 정신적 피로도가 더 컸다"며 "상식적으로 누가 인권센터 때문에 받은 심리적 피해를 인권센터에서 상담 받을 생각 하겠냐"며 인권센터의 존재 이유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 대학 인권 찾기


지난해 2월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됐을 당시, 본지에서 우리 대학 인권센터 설치를 취재한 결과, "뚜렷한 윤곽 없이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해진 바 있다(본지 1166호 2면 참고).


시간이 흘러 현재 인권센터 설치는 의무화됐다. 하지만 인권센터가 설치된 대학에서조차 내실화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상황 속, 이제 막 인권센터가 출범한 우리 대학교  상황은 어떨까.


우리 대학 인권센터는 승학캠퍼스 인문대 건물 5층 법무 감사실 공간을 같이 사용한다. 인권센터의 구성원으로는 법무 감사실 실장, 전임 연구 교수로 구성돼 있으며, 법무 감사실 팀에서 행정적으로 지원한다. 인권침해 신고가 접수됐을 시, 심리상담은 학생상담센터에서 겸무로 진행할 예정이며, 새로 개설될 인권센터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바로 인권침해 신고가 가능하다.


또한 기획과 관계자에 따르면 "2022학년도 인권센터 예산은 법무감사실 예산을 같이 사용할 예정이며, 추후 인권센터의 확립에 따라 별도 예산으로 분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새로 설치되는 인권센터에 관해 이병진(국제무역학 2) 학생은 "나이, 성별, 인종에 상관없이 누려야 할 인권을 지켜주는 수단이 생긴다면 너무 좋은 일이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그는 "하지만 주변 동기들이나 나 역시도 인권센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인권센터가 하는 일,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임애정 팀장 역시 "인권센터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교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학의 전반적인 현황과 각 대학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학 인권센터 설치 및 운영에 필요한 △법적 △제도적 △행정적 기반을 연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박혜정 기자
2108591@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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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1 19:36:49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논의가 꼭 필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잘 다뤄지지 않는 주제를 대학신문에서 조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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