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오늘도 사각(死角)과 여러 각도(角塗)를
조명하며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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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의 동서쪽에 배향하는 현자들과 충절 및 대의를 탁월하게 빛낸 분을 모시는 서원으로서, 실로 백세토록 숭상할 만한 47개 서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다 제사를 그만두고 현판을 철거하도록 하라.“
이는 고종 8년 3월 20일, 조선시대 온갖 비리와 부패가 난무하던 서원을 철폐하고 개혁하라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하교(下敎)다.
조선의 서원은 본래 배향된 선현의 정신과 뜻을 되새겨 학문과 덕행을 닦고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는 장소다. 이곳은 성균관, 향교와 함께 유림의 3대 학문의 전당으로 꼽히며 교육기관의 기능을 하기 위한 서적과 토지, 세금면제 혜택까지 받았다. 하지만 지나친 남설과 온갖 비리와 부패가 난무해 유교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흥선대원군마저 국가 재정과 군역, 당쟁의 폐단이 서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등록금 동결과 정부의 넉넉지 못한 예산지원에 대학가는 재정 수입의 증가를 꾀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등록금은 수년째 동결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등교육 예산 편성은 고작 11조 원 뿐이다. 교육부 예산 총액이 76조 원 이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림 없는 금액이다. 더군다나 이 예산에서 국가장학금 4조 원과 학술연구 1조 원, 대학교육 2조 원을 배정한 후 국립대학에 4조 원을 집행하고 나면 사립대학을 위한 예산은 사실상 한 푼도 없다.
재정수입의 다변화를 성공한 대학이 거의 없는 만큼, 등록금 동결과 적은 예산지원은 운영수지 적자 대학을 2012년 대비 2018년에 2배가량 증가시켰다. 계속되는 재정난으로 인한 전국의 대학들이 신음하지만 정작 국민들은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8월, 한국YMCA전국연맹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시민 83%가 반값 등록금 정책이 실현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2022년 고등교육 예산 중 일반대의 교육역량 강화를 위한 예산인 '대학교육 역량 강화' 예산은 오히려 5,117억 원으로 전년 5,395억 원보다 278억 원 줄어든 실정이다.
그렇다고 사립대 재정 지원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2008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 339개 사립대에서 총 4천 528건의 비리가 적발됐으며, 비위 금액은 약 4천 177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수없이 발생한 사학비리는 국민들이 사립대를 신뢰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신뢰도의 하락은 결국 사립대 재정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수많은 사립대들은 자신들의 고충을 토로하며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지원과 등록금 인상을 바란다. 그러나 그들은 재정난을 해결하기 이전에 대학의 사유재산화와 족벌 경영 문제를 해결해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21세기 대학들이 이러한 과오를 인식하고 반성한다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을 보란듯이 부수고, 19세기 서원과 다른 결말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진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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