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수] 두 남자가 가고 싶었던 서로 다른 신세계
[맞수] 두 남자가 가고 싶었던 서로 다른 신세계
  • 김성환 기자
  • 승인 2014.04.08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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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 빈센트 반 고흐(좌)와 폴 고갱(우). <일러스트레이션=이영주 기자>

모든 이에겐 각자 나름의 이상향이 있다. 모두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때로는 타협하기도 한다. 모든 일에 타협없이 살아간다면 너무 힘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달랐다.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타협없이 현실을 돌파하려 했다.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이 그 주인공이다.

화상(畵商)의 길을 걷던 고흐는 런던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게 된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본 고흐는 전도를 위해 벨기에의 악명 높은 탄광지대인 보리나주로 간다. 하지만 보리나주의 암담한 현실을 스케치하던 고흐는 어느새 종교인에서 화가로 변해있었다. 방랑생활 속에서 그려진 고흐의 초기 작품들 중 대작은 단연 <감자먹는 사람들>이다. <감자먹는 사람들>은 고흐의 전기를 대변하는 작품이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고흐는 공부를 위해 예술의 수도 파리로 간다. 고흐는 파리에서 밝은 화풍을 도입하는 예술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곧 대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낀 고흐는 아를로 옮겨가게 되는데, 여기서 고갱과 만나게 된다.

고갱은 원래 주식 중개인으로 넉넉하게 살아가던 아마추어 미술가였다.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사줄 정도로 여유가 있던 고갱은 가장으로서 가장 활발해야 할 30대 중반에 돌연 가족을 버리고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작품 활동 초기 고갱은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화가였다. 그러나 오만한 성격의 고갱은 유럽 미술계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마르티니크 섬으로 떠난다. 마르티니크 섬 생활을 통해 고갱은 색채의 사용과 주관에 의지하는 특유의 화풍을 어느 정도 확립하고 돌아온다. 프랑스로 돌아온 고갱에게 고흐의 초청장이 도착했다. 초청을 받아들인 고갱은 고흐가 준비한 그들의 집 '옐로우 하우스'가 있는 아를로 떠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같이 살게 되면 의가 상하는 경우가 많다. 개성 강한 두 맞수의 갈등은 예견된 일이었다. 두 사람의 성격과 예술관의 차이는 컸다. 고흐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반면 고갱은 기억에 의존해 창의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을 선호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를 고흐가 보게 되면서 폭발한다. 고갱의 그림을 자신에 대해 비꼬는 것으로 여긴 고흐는 술잔을 고갱에게 집어던진다. 견해 차이로 시작된 갈등들은 많은 오해로 이어진다. 결국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옐로우 하우스에서 강렬하고 불쾌한 기억만을 남긴 두 사람은 완전히 결별한다. 그렇다고 해서 헤어진 두 사람의 일이 각자 잘 풀렸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고흐는 아를을 떠나 정신병원 생활을 하며 힘든 시기를 보낸다. 고흐는 정서적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후기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펼치는데 이 후기 작품의 대표적인 것이 고흐하면 생각나는 <별이 빛나는 밤에>이다. 그러나 고흐는 결국 쇠약해진 몸과 정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한편 고갱은 새로운 영감을 위해 유럽을 떠나 타히티에서 그림을 그리지만 여전히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다. 이에 고갱은 더 원시적인 문명을 찾아 히바오아 섬으로 옮겨 작품활동을 계속한다. 하지만 히바오아 섬에서 정착민들과 다투면서 심신이 모두 지친 고갱은 결국 그곳에서 죽게 된다.

두 사람은 자신의 방식에 대한 고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의 점에서는 극명하게 달랐다. 고흐는 순전히 자신이 존경하던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기교를 익혀나가는 방식이었다. 고흐의 방식은 발전속도가 느려보였지만 독특한 화풍을 만들었다. 고흐의 이런 우직함은 현대에 와서 그가 특별한 예술가로 추앙받는데 일조했다. 고갱의 그림은 뚜렷한 윤곽선과 단순화한 형태, 실제 색깔과 다른 강렬한 색채가 특징이다. 그는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상상을 그림 속에 녹여냈다. 이런 면은 후대의 표현주의 미술에 기여하며 미술사에 그의 이름을 남기게 한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타협 없음은 그들의 인생을 갉아 먹었지만 인류에게 걸작을 남겨주었다. 이상향을 향해 가는 길에 힘이 부친다면 그들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처럼 위대한 성과는 몰라도 흔들린 마음을 다시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도서 <마틴 게이퍼드,『고흐 고갱 그리고 옐로우하우스』, 안그라픽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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