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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문화프리즘 l 안개 속 달맞이언덕에선 무슨 일이?김성종, 『달맞이언덕의 안개』
박현재 기자  |  hyunj92@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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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6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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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안개는 특유의 음산함 때문에 많은 영화나 책에서 공포감을 조성하는 장치로 이용된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안개가 끼면 마치 사건·사고가 일어날 것만 같다.

   
 

부산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달맞이언덕엔 안개가 자주 낀다. 높은 지형에다 근처에 바다가 있어 안개가 끼기 딱 좋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동트기 전 새벽, 달맞이언덕에는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안개 자욱한 달맞이언덕이라면 살인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상상력을 이용해 몽환적으로 풀어낸 책이 있다. 바로 『달맞이언덕의 안개』(김성종, 2015, 새움)다.

『달맞이언덕의 안개』는 대부분 달맞이언덕에 있는 '죄와 벌'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노준기와 카페주인 홍포, 그리고 다양한 주변 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실제로 달맞이언덕의 추리문학관 한 편에 '죄와 벌' 이라는 서점이 있어 소설임에도 마치 실제 사건을 읽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 노준기는 본능에 충실한 70대 원로 추리작가다. 젊은 시절부터 70대가 된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를 품으며 쾌락을 즐긴다. 하지만 노준기는 4번의 이혼을 하고,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고, 지독한 여성편력 때문에 자식이 눈앞에서 세상을 떠나도 알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을 산 인물이다.

노준기를 보고 있으면 얼핏 이 책을 쓴 김성종 작가가 떠오른다. 김성종 작가의 인생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달맞이언덕에서 활동하는 원로작가 노준기, 달맞이언덕에서 추리문학관을 운영하는 원로작가 김성종.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다.

『달맞이언덕의 안개』는 지난해 <부산일보>에 연재된 단편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주인공은 노준기 한 명이지만, 총 25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돼 있다. 이 중에서 몇몇 단편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분단국가의 현실과 군부정권의 독재를 다룬 단편소설 몇 편을 소개한다.

'찢어진 안개'라는 단편은 분단국가의 아픔을 재조명한다. 과거 노준기의 가족은 북한에서 살았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어린 노준기는 소년병으로 징집된다. 그의 형 노준수는 교사라는 직업 덕분에 징집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어린 노준기를 군대에 보낼 수 없어 교사직을 버리고 동생의 이름으로 대신 입대한다. 얼마 후 전쟁이 터지자 노준수는 실종되고, 노준기와 남은 가족 일부는 남쪽으로 내려온다.

실종된 줄만 알았던 노준수는 빨치산으로 지리산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체포된 후 53년간 남한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옥살이 중 폐암 말기를 선고받은 노준수는 '인도적 차원'을 명목으로 출소하게 된다. 출소한 그는 60여 년 만에 남쪽에 살던 노준기와 재회한다.

하지만 형제의 해후는 단 하루로 끝난다. 노준수가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며 중국으로 떠난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재회였지만, 북쪽에 남은 식구들을 외면할 수 없던 노준수는 동생을 뒤로한 채 떠난다. 그는 말한다. "내가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에 가서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 때문이었어." (57쪽)

한편 '안개는 알고 있다'는 군부독재의 후유증을 다룬다. 노준기는 이 단편에서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는 40여 년 전 '국가 전복과 대통령 암살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는 노준기가 고문을 당할 때 말했던 허위자백들 때문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7년 후 석방됐다.

억울한 수감생활을 마친 노준기는 지인의 딸 결혼식에서 우연히 고문을 주도하고 허위자백을 이끌어낸 인물을 발견한다. 40여 년이 지났어도 그날의 분노를 잊지 못한 노준기는 교묘히 살인을 저지른다. 결혼식장임을 이용해 쥐약을 넣은 와인을 여직원을 통해 건네고 태연하게 인사까지 한다. 이후 조용히 자리를 피해 옷을 갈아입고 그가 쓰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모진 고문을 가해 허위자백을 받아내는 비밀요원들은 당시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 노준기는 스스로 복수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영화 <변호인>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변호인>에서는 부당한 고문을 당한 당사자를 변호사가 도와주는 데 반해, 『달맞이언덕의 안개』에서는 당사자인 노준기 스스로 사건을 종결 짓는다.

책이 달맞이언덕을 배경으로 해서 부산에 거주하는 우리에게는 친근하게 느껴진다. 또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독립적인 듯 이어지는 매력이 있다.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은 책 추천평에서 "영국에 셜록 홈스와 에르퀼 푸아로가 있다면, 한국에는 '노준기'가 있다. 읽는 내내 달맞이언덕의 안개가 가득한 살인사건의 현장,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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