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서 살아남기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 임정서 기자
  • 승인 2015.11.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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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헬조선'과 '지옥불반도'라는 신조어가 유행 중이다. 이 단어들은 얼핏 듣기만 해도 우울하고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헬조선은 디시인사이드 역사 갤러리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로, 지옥을 뜻하는 영단어 'Hell'과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조선'의 합성어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지난달 29일 방영된 JTBC <썰전>에서 "지금 청년들이 한국을 헬코리아가 아니라 헬조선으로 부르는 이유는 자산이나 소득의 수준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신분으로까지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헬조선의 유행을 해석하기도 했다. 지옥불반도는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동명의 지역을 차용한 것으로, '지옥불'과 '한반도'의 합성어다. 헬조선과 의미가 같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개임맵에 한국의 상황을 빗대어 '헬조선 지옥불반도 지도'를 만들었다.

특히 헬조선과 관련된 웃지 못할 게시물들이 올 하반기부터 SNS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주로 2030세대가 헬조선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향유하고 있다. 최저임금, 반값등록금 등 정부의 청년 관련 경제정책은 물론 국회의원의 발언, 국정교과서 논란 등 정치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비판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헬조선과 더불어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단어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보통 'O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라는 문장으로 쓰인다. 금수저는 재력이나 권력이 막강한 기득권 집안에서 태어난 것, 흙수저는 가난하거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을 뜻한다.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에 은수저와 동수저도 있다. 다수의 평범한 청년들은 스스로를 이 시대의 흙수저라 칭하며 금수저만이 헬조선에서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자조한다.

우리 대학교 김지윤(중국학 2) 학생은 "SNS에 올라오는 헬조선 관련 글을 볼 때마다 한국의 청년층이 정말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을 느낀다"며 "한국에서 여전히 학연이나 재력 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흙수저보다는 금수저가 어떤 일을 하든 더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헬조선과 지옥불반도', '금수저와 흙수저' 같은 신조어의 유행을 마냥 청년 세대의 불평불만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청년유니온 부산지부 전익진 위원장은 "지금의 청년 세대들은 취업, 결혼, 육아 등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고 느낀다"며 "헬조선 같은 단어가 물질적·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그들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썰전>에서 수저를 구분하는 기준을 공개했다.

헬조선이나 흙수저라는 단어가 표상하는 청년들의 절규와 통탄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정말 지옥일까.

"커다란 짐을 진 채 사회에 던져지는 기분"
대학생 발목 잡는 학자금 대출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2014년 기준 70%에 이른다. 더군다나 대학을 안 가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분위기다.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는 데 고졸과 대졸의 차이도 현격하다. 대학을 가기 싫어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교육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15년 4월 대학정보 공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1인당 연간 평균등록금은 667만 원이다. 대학생 대부분이 대학등록금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워 부모에게 손을 벌리거나 학자금대출을 받는다.

한국장학재단은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고자, 지난 2009년부터 대학생 대상 학자금대출제도를 도입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의 이용률은 꽤나 높은 편이다. 국가장학금이나 교내외장학금 등이 있지만 수혜자가 한정돼 있고 장학금만으로 등록금 부담을 해결하기 힘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장학재단의 금리는 2.7%로 고금리를 적용하는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학자금 대출 경험이 있는 한 학생은 "대출을 받지 않으면 사실상 학교를 다닐 수 없는 형편이다"며 "졸업 후 한시라도 빨리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부담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학자금대출 제도는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도와주는 요긴한 제도지만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커다란 짐으로 돌변한다. 최근 학자금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이른 나이에 '빚쟁이'나 '신용불량자'라는 멍에를 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지난 5월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발표한 '학자금 대출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따르면 학자금대출 잔액은 2010년 3조7,000억 원에서 2014년 10조7,000억 원으로 약 1.9배 증가했다. 채무자 수는 70만 명에서 152만 명으로 1.2배가량 증가했다.

우리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9일 기준 총 59명의 학생이 2015학년도 2학기 미등록 제적 처리됐다. 이 중 일부는 등록금 분할납부 신청 후 2차 납부 기간까지 등록금을 내지 못해 제적됐다. 이러한 학생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다분하다. 다음에 있을 분할납부 기한을 지키지 못해도 제적당하기 때문이다. 학사관리과 김윤진 담당자는 "학생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속단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 부담이 미등록 제적 처리의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5,580원, 이런 시급!"
등록금에다 생활비까지… 대학생의 이중고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은 지난달 16일 대학생 581명을 대상으로 한 '2015 대학생 생활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대학생 1인 월평균 생활비는 36만6,022원이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대학생은 월평균 32만112원, 자취나 하숙 등 혼자 생활하는 학생들은 16만 원가량 더 많은 48만8,934원이다.

생활비 조달 방법은 '일부는 부모님에게, 일부는 아르바이트로 조달한다'가 36.8%, '모두 본인이 마련한다'가 30.1%로 나타났다. 과반수의 대학생이 사실상 생활 전선에 몸담고 있는 셈이다. 최예정(신문방송학 2) 학생은 "주위에도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레이션=전은경 인턴기자>

정부에서 정한 최저임금 5,580원은 너무 적고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곳이 많아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 모두를 감당하기는 힘들다. 익명을 요구한 우리 대학 A학생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A학생은 구인구직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시급이 5,580원이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구했지만, 막상 가보니 점장은 시급이 4,500원이라고 통보했다.

A학생은 "실망한 표정을 짓자 점장은 이 시급에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아쉬울 것 없다는 태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시급은 비슷하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며 "용돈 한 푼이라도 벌려 애쓰는 대학생들의 상황을 악용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익명을 요구한 우리 대학 B학생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영화관에서 일하는 B학생은 얼마 전 통장에 들어온 금액이 자신이 계산한 급여보다 적었다.

B학생은 "업주에게 문의하니 채용 당시 시급은 각종 세금과 보험료를 공제하지 않은 금액이라고 했다"며 "분명 기타 금액이 공제된 시급으로 알았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 당황스러웠다"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다. 더불어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임금인데도 지켜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규직은 꿈의 직장"
청년 대부분 비정규직 전전

정부는 지난 7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임금피크제 확대 △기업의 신규채용 유도를 위한 청년고용증대세제 신설 △인턴의 정규직 전환 시 기업에 지원금 제공 △시간선택제 공무원 신규채용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단기적인 일자리 수 증가에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일자리의 질적 확대나 장기적인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지기에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 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는 12%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증가했다. 이에 반해 평균 근속 기간은 2개월 감소한 2년 5개월이다. 게다가 20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전년보다 3만5,000명(3.5%) 늘었다.

이처럼 20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늘어나는 중이며,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도 커지고 있다. 황정효(국어국문학 3) 학생은 "비정규직은 임금 등 처우가 좋지 않고 기업 사정에 따라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고 알고 있다"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윤상우(사회학) 교수는 "청년세대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끼고, 기성세대에 비해 기회의 평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헬조선이나 지옥불반도 같은 단어들이 생겨난 것 같다"며 "안타깝지만 그것은 청년세대보다는 기성세대의 잘못이 더 크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런 구조적 어려움을 벗어나려면 개개인의 노력보다는 정부 정책이나 제도의 혁신이 밑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청년세대들 또한 개인이 힘든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서로가 더불어 문제의식을 갖고 함께 고민하며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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